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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시설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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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시설은 청이우리나라와의 신속한 연락을 위해 1885년에 서울 - 인천 및 서울 - 의주사이에 처음으로 가설되고, 그 뒤 서울 - 부산간의 전신이 가설되었다. 전신은 문자로 쓴 말을 먼 곳까지 전달하는 방법으로 1837년 미국의 모스에 의해 인자 전신기가 발명되었고,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고종 22년(1885년)으로 서울과 인천 사이 개통을 보았다. 일반인들의 본격적 이용은 한성과 의주사이의 전신선이 건설된 후부터이다

조선은 1885년 9월 서울부터 인천까지 모스부호를 이용한 전신을 가설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한성전보총국을 세웠다. 경인 간 전선선로에 이어 1885년 10월에는 서울∼의주 간 서로(西路)전신선로가 개통됐다. 서로의 개통으로 비로소 우리나라는 청나라를 거쳐 유럽까지 전기통신이 가능하게 됐다.

 

1888년 개통돼 서울과 부산을 잇는 남로 전신선은 우리 기술로 이루어진 쾌거였다. 1887년부터 조선 정부는 독자적인 전선 가설을 계획했다. 그래서 인천에 있던 독일 회사 세창양행과 교섭해 각종 전신기구와 기계를 구입하였다. 또 당시 정부의 영어교사였던 영국인 할리팍스로 하여금 전선 노선을 측량하게 하였다.

 

또 조선 정부는 전신업무를 전담할 기구로 조선전보총국을 세웠고 오늘날 정보통신부 장관에 해당하는 초대 총판도 임명했다. 전기통신법인 ‘전보장정’도 만들었다. 이 남로전선 건설로 조선은 해외 전신과도 연결됐다. 남로전선의 개설이 가까워지자 정부는 이 전선을 다시 연장해 서울에서 함경도에 이르는 전선을 가설하고 이를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전선에 연결시킬 것을 비밀리에 계획했다.

 

마침내 남로전선이 개설된 3년 후인 1891년에 서울과 원산을 잇는 북로전선이 개설됐다. 이 북로전선이야말로 함경도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돼 명실상부한 동양 3국의 주요 간선으로 발전시키려 한 꿈이 담겨져 있는 전신선로였다.

 <출처: 전자신문  2008-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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