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칭백과

티칭백과란?

교과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콘텐츠로서, 스마트한 수업과 자기주도학습을 지원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서비스입니다.

지원 서비스
- 주제별 맞춤 지식 공유
- 다양한 스마트 기기 지원
- 멀티미디어 자료 제공
Home > 중등 > 역사 > 역사②

대한 제국 수립 大韓帝國, 1897~1910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 프린트 url복사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추락한 국가의 위신을 높이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에 연호를 광무(光武로 바꾸고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정한 뒤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 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국민의 반일 감정이 높아지고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자 중앙의 일본군 주력 부대가 의병 진압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었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불안을 느끼던 고종은 이 틈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겨 갔다(1896, 아관 파천). 아관 파천을 계기로 열강의 이권 침탈이 심해지며 독립국으로서의 조선의 지위가 불안정해졌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는 동안 국내적으로는 최익현 등 환궁을 요구하는 상소가 계속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조선에서 러시아의 세력 독점을 견제하려는 국제적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으로 환궁하였다. 이후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황제 칭호를 쓰자는 상소가 잇달았다.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에서 고종은 실추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897년 8월에 연호를 광무로 바꾸고,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고 '대한 제국’수립을 선포하였다. 고종은 이어 13일 자신이 황제 자리에 오른 것과 국호를 새로 대한 제국으로 정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조서를 내리고, 14일에는 이같은 사실을 한성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관과 영사관에 통보하였다. 


대부분의 외세는 대한 제국 수립에 대해 냉담하였으나, 일본이 반일 감정을 무마하고 대한 제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장 먼저 승인하자 이어서 다른 열강도 승인하였다. 대한 제국은 '구본신참'이라는 원칙아래 이후 광무 개혁을 추진하였다.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였던 환구단: 오른쪽의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으로, 1897년 10월 12일 고종의 황제 즉위식이 이곳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왼쪽의 황궁우는 하늘과 땅의 모든 신령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899년에 만들어졌다. 환구단은 1913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웨스턴 조선 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확인문제

1.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만에 환궁한 궁궐은?

2.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곳은?

정답 확인하기

참고자료

참고자료

더보기 >

관련용어

지식나눔

관련된 나의 지식을 등록하여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의견나눔

0개의 의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