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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HOME 자유학기 · 창체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화폐 개혁

경제 활동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인위적, 통제적으로 화폐의 가치를 조절하는 조치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1962년 두 차례 화폐 조치가 단행되었다.

6·25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시작되자 정부는 1953년 2월 15일, 긴급 조치를 통해  화폐 개혁을 단행하였다. 2월 17일부터 ‘원’ 단위의 화폐 유통을 금지하고 ‘환’ 단위의 화폐를 유통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당시의 교환 비율은 100원 = 1환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교환해줄 신 화폐를 세고 있는 은행원(1953) 


전쟁 중이었음에도 신권을 사용하는 화폐 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1947년 미 군정청에서 화폐 개혁을 준비하며 미리 화폐를 인쇄해두었기 때문이었다. 미 군정청은 미국 재무부 인쇄국에 의뢰해 1환, 5환, 10환, 100환, 1000환의 5가지 화폐를 제작한 뒤 이를 서울의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 중이었다고 한다. 1953년의 화폐 개혁은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경제 거래가 마비되고 오히려 물가가 폭등해 실패한 통화 개혁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산 지점 한국 상업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1962)


우리가 ‘원’ 단위의 화폐를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은 1962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와 함께 단행된 제2차 화폐 개혁부터이다. 정부는 1962년 6월 10일 긴급 통화 조치를 통해 ‘환’으로 표시된 화폐를 ‘원’으로 표시된 화폐로 변경하고 환의 유통과 거래를 전면 금지하였다. 이 때의 교환 비율은 10환 = 1원으로 정해졌다.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외국 원조가 1957년을 정점으로 격감함에 따라 자립 경제 확립을 위한 적극적인 자금 조달책이 필요했던 가운데 정부는 성장 중심의 강력한 경제 운용 계획을 공표하였다. 이것이 1962년 발표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이 계획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이 필요했기 때문에 단행한 것이다.


시행 첫날인 6월 10일은 일요일인데도 은행은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고, 영국 화폐 회사에 급히 인쇄를 의뢰하는 바람에 ‘독립문’이 ‘득립문’으로, ‘조폐공사’가 ‘조페공사’로 잘못 인쇄되기도 하였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재원을 마련하고 부정 축재 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갑작스런 통화 개혁으로 물가는 뛰었고 기업 활동도 날로 위축되어 사회 불안까지 가중되었다. 결국 시행된 지 1개월 만에 전면 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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