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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ㆍ이라크 전쟁Iran-Iraq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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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월 22일 ~ 1988년 8월 20일까지 8년여에 걸쳐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서 계속된 군사적 분쟁이다. 전쟁의 근원은 그동안 쌓여온 국경 분쟁과 종교 갈등이었다. 결국 1980년에 시작된 전쟁은 두 나라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만 남긴 채 1988년 유엔의 중재로 막을 내렸고, 주변 지역 및 국제 정세에 영향을 주었다.

1979년 중동에서는 중동의 패권을 노리는 2명의 지도자가 등장하였고, 이란과 이라크는 각각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1979년 2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친미 성향인 팔레비 왕조가 멸망하고, 급진 시아파 세력인 이슬람 원리주의자 호메이니가 집권하였다. 7월에는 이라크에서 서방 국가와 친숙한 관계였던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때부터 양국은 국경 근방에서 소규모 군사 충돌을 빈번하게 벌였다. 



전쟁의 표면적인 이유는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양국 접경 지역의 경제·군사적 요충지인 샤트 알 아랍 수로를 둘러싼 국경 분쟁이었다. 이라크는 이 수로 전체의 지배권을 주장하였고, 이란은 수로 중간에 국경선을 그어야 한다며, 수십년 동안 대립하여 왔다.

두 나라는 1975년 알제리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 회담 때 수로 중앙을 국경선으로 한다는 국경 협정을 맺었다. 당시 중동의 최고 강자였던 이란의 팔레비 국왕의 입김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후세인이 집권한 후 당시 협정은 불평등 조약이므로 폐기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이란과 이라크는 오랫동안 누적된 민족적, 종교적 갈등이 있었다. 이란은 인구 전체의 80% 이상이 시아파이고,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로 2등분되어 있지만  전통적으로 수니파가 상대적으로 다수인 시아파를 지배해 왔다. 이슬람 혁명의 확산을 노린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라크 내 시아파에게 수니파가 정권을 잡고 있는 권력 체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이에 후세인은 호메이니의 위협을 차단하고 중동의  패권 확립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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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월 22일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이슬람 혁명 후 이란의 불안정과 국제적 고립을 틈타, 양국 국경을 흐르는 샤트 알 아랍 강의 공동 영유권을 파기하고 단독 소유를 주장하며 이란을 선제 공격하였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모두 이라크를 지원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초기부터 이라크에 막대한 무기를 판매하였고, 미국은 이라크의 무차별적인 화학무기 사용을 묵인하였다.  


이라크는 전쟁 초기에 샤트 알 아랍 수로를 장악하였고, 곧바로 주요 도시 호람샤흐르와 아바단을 점령하는 등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에 이라크의 승리로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견하였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으로 정규군의 전력이 크게 약화된 데다 미국 등 서방 국가의 경제 봉쇄로 군수 지원도 극히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혁명 정신으로 무장한 이란의 혁명 수비대와 민병대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혔다. 양국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1982년 이후 전쟁은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졌다. 두 나라는 서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도시와 군사 및 석유 시설에 대해 산발적인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가하여 상대국의 도시, 군사 및 석유 시설을 파괴하였다. 


1984년에 들어서면서
 페르시아 만에 정박해 있는 상대국의 유조선들을 포격하였다. 이란이 쿠웨이트와 그 밖의 페르시아 만 연안국들의 유조선을 공격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과 서유럽 여러 나라는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페르시아 만에 전함을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이라크군의 공격적인 전술에 이란군은 다시 밀리게 되고, 이라크군의 미사일 세례와 그 당시 친미 국가였던 이라크의 동맹이었던 서방 세계가 해상에서 이란을 서서히 조이자, 이란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패퇴하였다.
1988년 이란의 경제가 악화되고 이라크가 전투 지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8월 22일 이란이 국제 연합의 휴전 중재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전쟁이 끝난 이후 이라크는 쿠웨이트 침공에 따른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전쟁 후의 대혼란 속에서 후진국으로 추락하였고, 이란 역시 전쟁 피해를 복구하였지만, 정권 자체의 한계로 인한 국제 제재 때문에 중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0년 양국은 1975년 협정대로 국경선을 정하기로 국교를 회복하였지만, 샤트 알 아랍 수로를 둘러싼 충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확인문제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선을 따라 흐르는 수로로, 이란·이라크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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