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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소떼 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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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총 1001마리의 소떼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였다. 분단 이후 민간인이 정부 관리의 동행 없이 판문점을 통과한 첫 사례였다. 이를 계기로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 협력이 본격화되었다.

1998년 6월 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에 제공할 소 1001마리 중 1차분인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을 방문하였다. 정주영 회장은 새로 개통된 문산-판문점 간 통일대교를 지나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에 도착, 평화의 집에서 방북 기자 회견을 가진 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을 지나 도보로 군사 분계선을 넘어갔다.

분단 이후 민간 차원의 합의를 통해 군사 구역인 판문점을 개방, 민간인의 북한 방문이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방북은 외환위기 직후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힘들어하던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고, 실향민들을 설레게 하였다.

 

소를 실은  트럭이 판문점을 통과해 가고 있는 모습(1998. 6. 16.)


그런데 정주영 회장은 왜 하필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을까? 정주영 회장은 17세 때 지독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아버지가 누이를 시집보내려고 소를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고향을 뛰쳐나왔다. 그가 몰고 간 소떼는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몇 배로 보답하고 싶은 생각에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왜 1000마리도 아닌 1001마리였을까? 처음에는 정주영 회장도 1000마리의 소를 생각하였지만 앞으로도 계속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싶어 생각을 바꾸었다. '1000+1', 추가된 1마리의 황소는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그의 의지였던 것이다.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은 이후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명 '정주영 소떼 방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0세기 가장 아름답고 충격적인 전위예술"이라며 극찬하였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핑퐁 외교가 있었다면,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황소 외교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세계 유력 일간지들도 정 회장의 방북 소식을 대서 특필하였다. 

 

정주영 회장은 7박 8일간의 방북 기간 동안 고향인 강원특별자치도 통천군 노상리를 방문해 친척들을 만난 뒤 대북 협력 사업 지역인 금강산과 원산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북측 관계자들과 만나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 서해안 공단 사업 및 전자 관련 사업, 제3국 건설 시장 남북 공동 진출, 소형차 조립 사업 등을 추진키로 협의하였다. 같은 해 10월 27일 나머지 소 501마리와 함께 정 회장은 2차로 북한을 방문했으며, 이 기간 동안 금강산 관광 사업 등 여러 경협 사업에 대해 심층적 합의를 이루었다.


소떼 방북으로 '햇볕 정책'으로 불린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 협력 정책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였다. 1998년 11월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남북한 교류나 통일 농구 대회, 북측의 예술 교류 공연 등으로 이어지면서 체육과 문화를 서로 나누는 것으로까지 발전해 남한의 대북 창구 역할도 해냈다. 2000년 6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 회담이 열렸다. 이어 8월에 개성 공단 건립에 합의하였다. 남북 민간 교류는 외국 투자를 늘리면서 외환위기 극복에도 기여하였다. 



확인문제

1998년 금강산 관광 시작과 남북 경제 교류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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