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신라의 대외 교류

통일 신라는 당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산둥 반도 일대에는 신라인의 집단 거주지인 신라방과 감독 관청인 신라소, 신라인을 위한 사찰인 신라원이 세워졌다.

통일 신라는 8세기 이후 주변 국가인 당, 일본 등과 활발히 교류하였다. 그중 당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하였다. 당에는 공식적인 외교 사절단 외에도 발달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 많은 유학생과 승려가 건너갔다. 이를 통해 선진 학문과 사상이 신라 사회에 수입되어 신라 문화의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유학생 중에는 당의 빈공과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에 건너간 승려들은 수준 높은 불교를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불교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처럼 당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을 오가는 상인들의 발길도 잦아졌고, 다양한 해상 교통로가 생겨났다. 이와 함께 산둥 반도를 비롯한 중국 동쪽 해안 지대에는 신라인의 무역 거점들이 다수 생겨났다. 그리고 신라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신라방, 이들을 감독 관청하는 신라소, 신라인이 지은 사찰(신라원) 등이 세워졌다. 특히 9세기 이후 장보고는 당시의 해상 교역을 장악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하여, 통일 신라의 불교와 유교 문화가 일본에 전해져 일본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라는 당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펼쳤고, 일본인은 신라의 배를 이용하여 당에 왕래하기도 하였다. 모전이라고 불린 양탄자와 사하리로 알려진 놋그릇ㅇㄹ 비롯하여 신라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물품들이 일본의 지배층을 매료시켰는데, 당시 일본 귀족들이 작성한 구입 희망 물품 목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 


당시 울산항과 당항성은 외국 상인이 자주 찾는 국제 무역항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이슬람 상인을 통해 신라는 동남아시아와 서역의 보석, 향료 등을 수입하였으며, 아라비아 세계까지 신라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 직접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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