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공격으로 금관가야가 약화된 뒤, 5세기 후반에는 대가야가 가야 연맹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6세기 이후 세력이 점차 약해져 결국 신라에 병합되었다(562).
4세기 이후 금관가야의 힘이 급속히 약해지면서, 가야 연맹체의 결속력도 크게 떨어졌다. 더구나 왜의 침략으로 어려움에 처한 신라 내물왕이 고구려 광개토 대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고구려군이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면서 김해 지역까지 온 것이다. 이는 금관가야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고, 이후 금관가야는 전기 가야 연맹 주도국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단지 가야 소국의 하나로 전락하였다.
5세기 후반부터는 고령 지역의 대가야가 금관가야를 대신하여 가야 연맹을 주도하여 갔다. 이를 후기 가야 연맹이라고 한다. 대가야는 고구려 군대가 금관가야를 공격할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고, 농업에 유리한 입지 조건과 풍부한 철 산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대가야는 삼국이 경쟁하는 틈을 타서 소백산맥 서쪽의 남원, 임실 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세력을 확대하였다. 또한 중국 남조에 사신을 보내고, 신라에 침입한 고구려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6세기 이후 안정을 되찾은 백제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점차 위기를 맞았다. 백제는 남원, 임실 일대를 회복한 후 섬진강을 넘어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가야 영역을 점차 자국의 영토로 만들어 갔다. 이에 대가야는 결혼 동맹을 맺어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엿으나, 신라 역시 낙동강 주변의 소국들을 위협하여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대가야 세력은 점차 연맹 주도국으로서의 권위를 잃어 갔다. 결국 금관가야의 멸망(532)에 이어 대가야도 신라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다(562). 이로써 가야 연맹은 완전히 해체되어 소멸하엿다.
출처 : 직접집필
<○× 문제>
1. 5세기 후반 이후 가야 연맹을 이끈 나라는 금관가야이다. ( )
2. 대가야가 신라 진흥왕 때 멸망하면서 가야 연맹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