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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HOME 자유학년 · 창체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이방자(의민 태자비) ( 李方子)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로, 의민 태자 이은의 비이다. 이방자라는 이름은 남편의 성 이(李)에 마사코의 한국식 발음인 방자(方子)를 붙인 것이다.

이방자 황태자비는 1901년 11월 4일, 메이지 천황 조카이자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의 장녀 마사코(方子)로서 도쿄에서 태어났다. 1916년 유학을 명목으로 일본에 볼모로 있던 대한 제국 황태자 영친왕이라 불리는 이은(의민태자)과 약혼하였고, 1920년 일본 황실 교육 기관인 학습원 여자 고등과를 거쳐 그해 4월 28일 도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일본의 불순한 의도로 이루어진 정략 결혼이었으나 이은과 단란한 생활을 하였으며, 1921년 장남 진(晉)을 낳았으나 이듬해 잃었고, 1931년 둘째 구(玖)를 낳았다. 


△이방자 여사 낙선재(창덕궁) 입궁 장면(1962. 6. 14.)

 

그러나 1945년 광복 후 이왕가(李王家)가 폐지됨에 따라 일본 왕족에서 제외되어 재산을 몰수당하였고, 영친왕의 복권을 두려워하였던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귀국이 좌절되고 국적 없이 재일 한국인으로서 불행한 삶을 살았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새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초청으로 1963년 뇌혈전증으로 인한 실어증에 걸린 남편 영친왕과 함께 귀국하여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냈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영결식(1989. 5. 8.) 

  

1970년 영친왕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낙선재를 지키며 봉사 활동에 전념하였다. 특히 장애인들을 돕는 봉사 활동에 정성을 쏟았다. 정략 결혼의 희생자로 조선의 황태자비가 되어 힘든 삶을 살아야 하였음에도 “내 조국도, 내 묻힐 곳도 한국”이라는 신념으로 살았다고 한다. 1989년 4월 30일 낙선재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둔 그녀는 5월 8일, 경기도 남양주시 홍류릉의 영친왕 묘소에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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